직장인 브이로그 형식을 최초로 활용한 남의 일터 엿보기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부터 <진짜 사나이> 헨리의 '1도 모르겠어요' , <나 혼자 산다>의 세 얼간이 캐릭터, <무한도전> 광희의 종이 인형까지. 이 모든 것을 연출하고 편집한 이가 바로 정다히(영어교육과 04) 동문이다.
정 씨는 MBC PD로 입사 후 명실상부한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맡아 연출하고 있다. 예능 촬영 현장부터 편집까지 모든 제작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예능 PD의 일과 삶에 관해 정 씨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PD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영어교육과인데 선생님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방황 했죠. PD라는 꿈은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한 대외 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역 방송과 라디오 연출, NGO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PD님께서 예능 PD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돌 그룹을 따라서 방청을 다니다가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PD를 막연히 꿈꿨던 게 시초였어요. 꿈을 구체화 시킨 건 기획이 적성에 맞다는 걸 깨달은 때였어요. 내가 기획한 걸 가장 재주 있는 사람들이 구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재주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지 생각해보니 방송국에 있더라고요.
예능 PD 준비과정은 어땠나요.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 2학년 때는 학과 과목을 공부하며 많이 놀았고, 3학년 때 언론고시반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준비했습니다.
PD 준비에 도움이 되었던 학교 활동이 있나요.
학과에서 영어 연극부를 했어요. 그때 연출을 섣부르게 맛봤죠. 원래 연극부에서는 작품성 있는 연극을 주로 했는데 저는 취향이 대중적이라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뮤지컬을 연출했어요. 제 연출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짜릿함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죠.
예능 PD의 프로그램 기획 과정이 궁금합니다.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일을 시작하나요.
PD들마다 정말 달라요. 잘 될 것 같은 소재부터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가의 기획안을 발전시키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기획 아이디어를 제가 먼저 던지는 스타일이에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실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찾곤 하죠. <아무튼 출근!>도 그렇게 시작된 기획이었어요.
입사 후에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 등 굵직한 프로그램을 많이 맡으셨는데요. 편집하신 장면 중 가장 화제성을 얻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정말 많은데요. 지금 생각나는 건 <진짜 사나이>에서 헨리가 '1도 모르겠어요'라고 했던 장면이에요. 헨리가 한국어를 잘 못해서 '1도 모르겠어요'라고 퀴즈 보드에 적은 게 너무 귀엽더라구요. 그 귀여움을 최대한 잘 살려서 편집했는데 전국민이 사용하는 밈이 되었어요. 나중에 <나 혼자 산다>에서 헨리를 다시 만나 우리가 유행을 만들었단 말을 나누며 신기해하기도 했죠.
혜리가 애교를 부린 장면의 파급력도 대단했고요. 혜리는 그때 이후로 완전히 스타가 되었어요. <무한도전>에서 추격적으로 지친 광희가 불쌍한 모습으로 떡을 먹는 장면에 나온 '쯔왑쯔왑'이란 자막도 제가 처음 사용한 거였어요.
작업을 할 때마다 말의 맛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런 자막들이 대중적인 반응을 얻은 순간이 아무래도 인상 깊게 남습니다.
첫 메인 작품으로 <아무튼 출근!>을 연출하셨는데요. 프로그램 발전 계기와 연출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메이저한 프로그램을 자주 하다 보니 안 해봤던 걸 하고 싶더라고요. 짜여진 버라이어티, 관찰 프로그램 말고 진짜 이야기만이 담을 수 있는 날 감성에 갈증을 느꼈죠.
그런데 아무래도 없던 시장을 개척하는 게 힘들었어요. 메인 PD로서 팀원을 이끄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죠. 팀을 위해 제가 악역을 자처했던 적도 많아요. 그래도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이 많이 나오고 시청률도 좋아서 뿌듯했답니다.
앞으로 꼭 만들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온전히 내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 하나만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대중, 동료, 회사의 입맛을 고려하느라 발전 시키지 못한 기획안도 많거든요. 내 마음에 드는 세계관을 제대로 한번 구축해 보고 싶어요. 가령 예능이지만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이요. 지금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담아 내보고 싶어요.
지금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다시 돌아가도 PD를 하실 건가요.
우선 다시 돌아간다면 주식을 엄청 살 거예요. (웃음) 그 돈을 바탕으로 제작사를 차려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마음껏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제까지 타이밍, 투자금 때문에 프로그램을 멈췄던 적이 꽤 많거든요.
PD는 무조건 할 거예요. PD라는 직업은 너무 재밌어요. 나의 생각과 세계관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게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잖아요. 프로그램 하나가 일종의 스타트업 같아서 오너십도 가질 수도 있고요. 새로운 걸 하는 데서 오는 전율이 크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예능 PD를 꿈꾸고 있는 한양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MBC 최종 면접 전날, 라디오스타를 보다가 한 생각이 있어요. '그래 PD 안 되면 선생님 해서 라디오스타나 보고 웃으면서 살자'라는 생각이요. 하루 종일 긴장 상태에 있으면서 면접에 꼭 붙어야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간절한 마음을 놓으니까 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여러분에게도 취업 과정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아무튼 출근!>을 연출하며 느낀 건데요. 이 세상에 미덕 없는 직업은 없어요. 가장 불행한 건 내가 내 일을 사랑하지 않는 거죠. 어떤 일을 하던 그 일만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그 속에 몰입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모두 파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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