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나에게 하나의 작은 오케스트라다'
클래식 기타의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말이다. 클래식 기타는 그 자체만으로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한 아름다운 악기다.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성하진(작곡과 4) 씨가 지난 9월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열린 제13회 미켈레 피탈루가 기타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작곡가로는 14년 만의 성과이다.
성 씨는 학교에서 여러 창작 활동을 하며 클래식 기타와 작곡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제 그는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연주자'로서의 항해를 앞두고 있다. 한국의 기타 선율을 세상에 알린 성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인으로서 14년 만의 우승, 위대한 도전의 시작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작곡과 19학번 성하진입니다. 작곡과에 2019년도에 입학해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어요. 특히 클래식 기타 음악 분야에 집중하고 있고, 최근에는 작곡가 및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며 공연을 통해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미켈레 피탈루가 클래식 기타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클래식 기타를 위한 작곡 콩쿠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드문 편이에요. 미켈레 피탈루가 콩쿠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기타 콩쿠르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몇 안 되는 콩쿠르 중 하나입니다. 이번 콩쿠르는 전 세계 클래식 기타를 위한 몇 안되는 작곡 경연대회 중 하나로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고, 수많은 작곡가들이 참여하는 대회라서 참가만으로도 의미가 깊었어요.
해당 콩쿠르는 매년 열리는 연주대회와는 다르게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돼서 이번이 제 첫 도전이었어요. 첫 기회부터 '유서 깊은 콩쿠르 우승'이라는 성과를 얻게 돼 영광입니다.
우승곡 <Myriade Regretz>는 어떤 곡인가요.
대회의 주제가 된 원곡은 옛 프랑스어 가사로 쓰인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조스켕 데 프레의 '천 번의 후회'라는 곡이에요. 저는 해당 곡에 10번의 변주를 더해 '만 번의 후회'라는 곡을 완성했습니다. 조스켕의 원곡 가사는 연인과의 이별 후 계속되는 후회를 주제로 삼고 있어요. 저는 이 곡의 가사와 특정 성부를 세부적으로 조명하고 10번의 변형을 통해 '만 번의 후회'라는 곡을 완성했습니다. 내년 대회 연주 부문 본선 경연 무대에서 연주될 예정입니다.
곡의 서사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나요.
각자가 듣는 상황과 감정에 따라 본인만의 후회를 이입해서 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포괄적으로 담고자 노력했어요. 전반적으로는 당신이 떠나보낸 것에 대한 후회, 자기 부정, 그 후 막심한 후회의 단계를 거쳐 결국에는 혼자 남게 되는 쓸쓸한 심상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원곡 가사 중 '이 크나큰 고통' / '큰 슬픔' / '나의 삶은 곧 죽음을 맞이하리' 등의 표현들이 있는데, 후회를 한다면 자연스레 겪는 감정의 키워드를 음악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어요. 또한 자신의 상황을 갑작스레 부정하는 부분도 포함돼 있습니다. 프랑스 샹송 가수 중에 Edith Paif(에디트 피아프)라는 전설적인 가수가 있어요. 그녀가 부른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아)' 라는 곡을 인용해 자기부정적인 감정을 상징했습니다.
후회와 열정이 깃든 준비의 여정
대회 준비 과정은 어떠셨나요.
대부분의 작업을 집에서 했어요. 기타를 옆에 두고 제시받은 악보를 분석하며 서사의 방향성을 고민했죠. 후회를 담은 가사다 보니 연인에 대한 후회뿐 아니라 청중 각자의 '후회'를 자극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과거의 것을 추억하고 아쉬운 것에 미련을 갖는 편이거든요. 본래 악보의 가사는 연인 간의 사랑을 제일 앞세웠어요. 그러다 제가 해왔던 모든 선택과 결정들에서 오는 후회들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원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테너 음역의 원곡 선율을 선택해 그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곡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준비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동시에 꼽아주신다면요.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날까지 밤을 새우며 작업했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 이탈리아 현지 시각으로 자정까지 제출이어서 한국에서 새벽까지 작업하다가 냈어요. 완성하기 위해 제출 시간까지 작업하고 바로 다음 일정을 위해 나갔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클래식 기타 콩쿠르의 작곡 부문이었기 때문에 기타 연주자 친화적인 곡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동안 제가 작곡했던 해외의 기타 작곡 대회에 제출한 기타곡들은 실험적인 편이었거든요. 이번 대회에서는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변형해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맞추는 것이 창작자로서의 목표였습니다. 음악을 창작하는 방법에 관해 특별히 정해진 답은 없지만, 이런 고민이 결과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학교에서의 경험들 덕분에 학교를 더 사랑하게 돼"
학우님의 학부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학교에서 우연치 않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클래식 기타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우연히 들어간 샤르만트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클래식 기타를 접하게 됐죠. 이곳에서의 수많은 클래식 기타 연주와 편곡을 경험하고 더 나아가 무대 전체를 기획하는 경험을 하면서 예술가로서 여러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던 시기는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 최고의 추억입니다.
'가리워진 길' 기타 연주 참여도 기억에 남아요. 지난해에 '가리워진 길'이 응원가로 채택됐잖아요. 자세히 들어보시면 클래식 기타가 함께 연주되고 있어요. 최대한 원곡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클래식 기타 소리가 녹아들 수 있도록 샤르만트 친구들이 편곡해 줬습니다. 유재하 선배님의 곡에 기타 연주를 작게나마 얹어볼 수 있어 큰 영광이었죠.
이번이 막학기인데 학교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건 정말 다 해본 것 같아요. 학내 모든 연주회, 중앙동아리 활동, 학생회 활동 등 적극적으로 학교의 모든 활동에 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는 코로나 이전에도 대학 생활을 1년 경험할 수 있었잖아요. 그 1년 여의 시간동안 학업도 만족스럽게 했고, 연주회나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참여했어요. 코로나 이전 1년 동안의 활동 및 사람들과의 교류가 현재까지 한양대에 애정을 품게 하는 소중한 경험들이에요.
기타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학부 시절 추억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2022년도에 유튜브에 올렸던 '온라인 연주회'를 만든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은 연주였거든요. 한 달도 안 돼서 제 독주회도 열었죠.
기타 전공생은 아니다 보니 클래식 기타 독주회를 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때가 연주자로서, 기획자로서, 작곡가로서 최선을 다해 열정이 넘쳤던 때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는 음악과 무대를 많이 경험해 보는 것이에요. 연주자·작곡가·기획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당분간은 지향하려고 해요. 올해 처음으로 프랑스에 다녀왔는데 분위기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하면 또 다른 음악이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죠. 최대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클래식 기타 음악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어요. 악기를 위한 창작 음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기타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경험하고, 열심히 활동하려고 합니다.
음악대학 연합으로 '대작'이라는 작곡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어요. 해당 동아리에서 12월 26일에 연주회를 합니다. 대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대학생 창작자와 연주자들 간의 원활한 교류 및 기회 창출을 위해 기반을 마련하고자 뜻이 맞는 친구들과 연합동아리를 결성하게 됐어요. 감사하게도 한양대에서 처음 시작할 수 있었고, 여기서 제 창작곡을 포함해 클래식 기타 연주 솔로 곡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한양인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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